[2022. 7. 18- 7. 24, 2022 여름 성수박스 초대전]
Editor's note
우리 모두가 가진 기억은 온전한 기억이 맞을까요?
저는 제 기억에 자신감을 가지고 살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러다 점차 나이가 들면서 기억력이 약해졌고 좌절감도 느껴졌습니다. 그러나 더 나이가 드니, 기억하지 못해서 행복해지는 일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기억하기보다는 잊고 싶은 일이 생겨나는 것이 어른의 시간인가 봅니다. "기억은 신의 선물이고 망각은 신의 축복" 이란 말이 온전히 이해되기 시작했습니다.
Strata of the Vulnerables
"연약한 것들의 지층"
우리의 기억은 이렇게 점차 약해저 가지만, 그 위에 수많은 기억이 쌓여 하나의 기억 조차 꺼내기 어려울 때가 있습니다. 이런 약하디 약한 기억의 레이어가 쌓여 가는 것이 일상입니다. 기억 한 층을 들여다 보기 위해 많은 기억의 얇은 막을 거둬내는 느낌입니다.
오다솔 작가의 작업은 이런 우리 기억과 망각의 작용을 포토몽타주란 기법으로 있는 그대로 표현합니다. 기억은 다른 기억으로 덮이고, 또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다른 기억으로 덮어질 만큼 기억은 연약하지만, 이런 기억이 쌓여 두터운 지층을 만들어 내고, 우리 삶은 성장합니다.

Untitled, Acrylic on canvas, 53×65.1cm, 2020
Q. 기억에 대해서 부터 이야기를 하려합니다. 작가님의 최초의 기억은 무엇인가요?
저는 이탈리아에서 태어나 세 살까지의 유년기를 그곳에서 보냈는데요. 저의 최초의 기억은 아이러니하게도, 이탈리아에서 한국에 입국한 날 공항에서의 기억입니다. 그날 밤 어린 제 눈에 충격적으로 인상적이었던 장면들이 그날을 기억하게 했나 봅니다. 비행기에서 내려 공항 청사까지 가는 셔틀버스의 '옆으로' 열리는 자동문, 그리고 그 안에서 마주친, 이마에 영롱한 보석을 붙이고 화려한 전통의상을 입고 있었던 중동 여성의 미소가 강렬하게 인상에 남았는데 그게 제 최초의 기억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아쉬운 점은 이날 하루 전이라도 기억도 아니라, 딱 이날이 저의 최초의 기억이라는 점입니다. 하루만 더 일찍 기억했어도 저에게도 이탈리아에서의 기억이 있었을 텐데 말이죠!

Q. 기억과 망각에 기반한 작업을 하게 된 배경이 있으신가요?
기억에 대한 작업을 촉발한 것은, 어떠한 기억을 온전하고 명확하게 되살려보려는 노력은 언제나 실패한다는 사실에서 오는 일종의 좌절감이었습니다.
저는 이탈리아에서 태어나 세 살까지의 유년기를 그곳에서 보냈지만 이를 전혀 기억하지 못합니다. 어쩌면 특별했을 수 있는 이 시기를 간절히 기억해내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고, 심지어 어느 순간부터는 부모님으로부터 전달된 이야기와 남겨진 당시 사진들을 기반으로 저 스스로 상상해 낸 바가 마치 실제 기억인 것처럼 혼동되기까지 했습니다.
인간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도구로 알려진 기억이, 사실은 이렇게 잊히거나 재구성되는 등 매우 불안정한 상태이고, 그렇기 때문에 기억의 완벽한 재생은 어떻게든 실패한다는 아이러니가 작업에 중요한 영감을 제공했습니다.
Q. 사람의 기억과 망각 작용 때문에 벌어진 작가님의 에피소드가 있으신가요?
스스로 실소가 터질 때가 종종 있습니다. 예를 들자면 같은 색의 물감을 이미 샀다는 점을 까맣게 잊고 계속 또 삽니다. 제가 특히 좋아하는 색이 몇 가지 있는데, 어쩌다 작업대를 정리하다 보면 물감통에 그 색의 물감들이 서너 개씩 들어있더라고요. 물감 값이 저렴한 것도 아니라 그럴 때마다 슬픔이 밀려오지만, 이내 ‘휴, 이거 다 쓰려면 그림을 더 많이 그려야겠네...’ 라고 다짐하곤 합니다.

Q. 포토몽타주 기법을 사용하게 된 계기나 의도가 있을까요?
기억은 우리가 인지하지 못하는 동안 무뎌지거나, 생략되거나, 조작되거나, 사라지는 등의 양상으로 서서히 퇴색되고 재구성됩니다. 망각의 과정에서 기억은 처음 입력될 당시와는 다른 내용으로 지속해서 변모해갑니다.
제 회화에서 포토몽타주는 망각의 과정을 시각적 표현기법으로 해석한 것입니다. 포토몽타주 과정에서 행해지는 이미지의 해체, 변형, 재배치, 재조합, 중첩, 합성 등은 마치 망각의 메커니즘이 그러하듯 구상으로부터 추상을 여과해내고 재창조해내는 과정입니다.
망각은 예측할 수 있는 지향점이 없는 잠재적 과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포토몽타주의 편집 과정 자체는 제 의지에 의해 행해지지만, 그 결과물을 예측할 수 있는 경우는 없습니다. 원본에서 해체되고 편집된 파편 이미지들이 새로운 화면에서 만났을 때 어떠한 결과를 만들어낼지는 처음부터 알 수 없습니다. 이러한 점에서 망각과정과 포토몽타주는 유사성을 띤다고 생각합니다.

Q. 포토몽타주와 더해 레이어링이 작품에 중요한 부분인 것 같습니다. 이런 레이어링에 대한 영감을 받게된 배경이 있을까요?
학부에서 환경 디자인을 전공하고 관련 분야에서 일하면서 건축, 인테리어, 조경 등 공간에 관련된 이미지를 많이 접하고 창작 소재로 활용하는 것이 익숙했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런 이미지들을 회화의 주된 소재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회화에서는 화면을 ‘회화 공간’이라고 상정하는 경우를 쉽게 접합니다. 어렵고 추상적인 개념이기는 하나, 오랜 시간 공간을 다뤄와서인지 이를 꽤 자연스럽게 나름의 의미로 해석하고 받아들일 수 있었습니다. 저에게는 말 그대로 회화의 화면이란 가상의 ‘공간’이라고 받아들여졌고, 따라서 이미지를 만들고 그림을 그릴 때에도 ‘짓는다(build)’라는 감각으로 작업합니다.
디자인 작업을 하면서 각종 2D/3D 컴퓨터 그래픽 툴을 많이 다뤄왔습니다. 지금도 캔버스에 물감으로 작업하기 전 아이디어를 얻거나 스케치를 만들 때 포토샵을 자주 사용합니다. 컴퓨터 그래픽 툴을 다룰 줄 몰랐다면 포토몽타주 기법을 사용하지 못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레이어는 컴퓨터 그래픽 툴의 기본적인 이미지 구성 방식입니다. 레이어가 쌓여감으로써 그림이 완성되어가는 방식은 저에게 아주 익숙합니다. 그래서인지 회화 작업에서도 레이어를 쌓는다는 감각이 자연스럽게 작동합니다. 포토샵 스케치를 캔버스에 물감으로 옮길 때 포토샵에서 만들어진 레이어들을 동일한 순서로 차곡차곡 쌓아 올리는, 즉 빌드업(build up) 하는 식으로 작업합니다. 레이어는 판화와 같은 인쇄 방식에도 기본이 되는 요소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제 작업이 비록 장르는 회화이지만 레이어를 차곡차곡 쌓는다는 의미에서 판화와 비슷하다는 생각도 합니다.
Q. 주로 작업의 영감은 어디서, 어떻게 받으시나요? 영감이나 아이디어를 얻기 위해 특별히 하는 행동이나 습관이 있으신가요?
포토몽타주의 소재로 쓰기 위해, 그리고 영감을 얻기 위해 이미지들을 꾸준히 수집해오고 있습니다. 웹에서 찾은 이미지일 수도 있고, 잡지를 훑어보다 발견한 것일 수도 있고, 길을 지나가다 마주친 포스터일 수도 있고요. 주파수가 맞는다는 느낌이 오면 일단 수집해두는 편이지만 주로 건축, 공간에 관련된 이미지가 많습니다.
종종 수집한 이미지들을 갖고 포토샵으로 잘라냈다가 붙였다, 여러 가지 시각 효과를 주기도 하면서, 즉 포토몽타주를 하면서 놉니다. 여기서 만들어진 이미지들이 반드시 작품의 소재로 이용되는 것은 아니나, 예상 밖에 좋은 이미지들이 만들어지면 그것을 시작으로 다음 작품의 스케치로 돌입하기도 합니다.
색다른 감각을 활성화하기 위해 수채화, 펜 등의 아날로그 재료를 활용해 수집한 이미지들을 ‘추상화’ 시키는 드로잉을 하기도 합니다. 포토몽타주가 결국은 구상으로부터 추상을 여과해내는 과정이란 점에서 같은 맥락에 있는 작업입니다. 하지만 이런저런 경우의 수를 거쳐 천천히 완성되는 포토몽타주와는 달리, 드로잉은 종이에 수정 없이 한 번에 그려지고 빠른 속도로 완성되기에 고도로 집중된 감각이 필요합니다. 그 때문에 디지털 환경에 없는 물리적 색채의 감각, 우연의 효과, 즉흥 제스처 등을 훈련/탐구할 수 있습니다. 드로잉에서 체득한 감각은 캔버스 작업의 회화적 표현 가능성을 넓혀줍니다.

Q. 회화 작가로서 작업에 임하게 하는 모티베이션, 그리고 앞으로의 나아갈 방향 등에 대해 자유롭게 이야기해주세요.
작업은 혼자 하는 것이지만 결코 혼자서는 모티베이션을 끌어올리기가 쉽지 않습니다. 다행히 주변에 작업을 꾸준히 하며 열심히 살아가는 친구들이 있어 힘을 얻습니다. 마음이 통하는 작가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스스로 미처 인지하지 못했던 제 작업에 대한 과거, 현재, 미래를 발견하기도 합니다.
앞으로 수십 년 작업해 나가는 동안 주제나 표현은 변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제 평생의 작업을 관통했으면 하는 것이 있다면, 정지된 회화 평면임에도 그 안에서 느껴지는 깊이와 일렁임, 동(動)의 감각입니다.
요즘 작업의 주된 포커스는, 포토몽타주라는 모국어를 구사하면서도 새로운 제2, 제3의 언어가 될 표현을 심도 있게 연구하는 데 맞춰져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제가 원하는 회화의 깊이를 만들어내고 생동을 가진 회화 공간을 창작할 수 있을까 고심하고 있습니다.
Artist Profile
학력
2019 홍익대학교 일반대학원 회화과 졸업
2008 이화여자대학교 조형예술대학 환경디자인과 졸업
개인전
2019 Montage, SPACE 갤러리, 서울
주요 단체전
2018 제20회 단원미술제 선정작가전, 단원미술관, 경기도
2018 Pseudo Reality (석사 학위 청구전), 홍익대학교 현대미술관, 서울
2015 Monologue, 삼원페이퍼갤러리, 서울
수상
2018 제20회 단원미술제 선정작가, 재단법인 안산문화재단
2017 제4회 전국대학미술공모전 입선, 미술과 비평
[2022. 7. 18- 7. 24, 2022 여름 성수박스 초대전]
Editor's note
우리 모두가 가진 기억은 온전한 기억이 맞을까요?
저는 제 기억에 자신감을 가지고 살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러다 점차 나이가 들면서 기억력이 약해졌고 좌절감도 느껴졌습니다. 그러나 더 나이가 드니, 기억하지 못해서 행복해지는 일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기억하기보다는 잊고 싶은 일이 생겨나는 것이 어른의 시간인가 봅니다. "기억은 신의 선물이고 망각은 신의 축복" 이란 말이 온전히 이해되기 시작했습니다.
Strata of the Vulnerables
"연약한 것들의 지층"
우리의 기억은 이렇게 점차 약해저 가지만, 그 위에 수많은 기억이 쌓여 하나의 기억 조차 꺼내기 어려울 때가 있습니다. 이런 약하디 약한 기억의 레이어가 쌓여 가는 것이 일상입니다. 기억 한 층을 들여다 보기 위해 많은 기억의 얇은 막을 거둬내는 느낌입니다.
오다솔 작가의 작업은 이런 우리 기억과 망각의 작용을 포토몽타주란 기법으로 있는 그대로 표현합니다. 기억은 다른 기억으로 덮이고, 또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다른 기억으로 덮어질 만큼 기억은 연약하지만, 이런 기억이 쌓여 두터운 지층을 만들어 내고, 우리 삶은 성장합니다.
Untitled, Acrylic on canvas, 53×65.1cm, 2020
Q. 기억에 대해서 부터 이야기를 하려합니다. 작가님의 최초의 기억은 무엇인가요?
저는 이탈리아에서 태어나 세 살까지의 유년기를 그곳에서 보냈는데요. 저의 최초의 기억은 아이러니하게도, 이탈리아에서 한국에 입국한 날 공항에서의 기억입니다. 그날 밤 어린 제 눈에 충격적으로 인상적이었던 장면들이 그날을 기억하게 했나 봅니다. 비행기에서 내려 공항 청사까지 가는 셔틀버스의 '옆으로' 열리는 자동문, 그리고 그 안에서 마주친, 이마에 영롱한 보석을 붙이고 화려한 전통의상을 입고 있었던 중동 여성의 미소가 강렬하게 인상에 남았는데 그게 제 최초의 기억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아쉬운 점은 이날 하루 전이라도 기억도 아니라, 딱 이날이 저의 최초의 기억이라는 점입니다. 하루만 더 일찍 기억했어도 저에게도 이탈리아에서의 기억이 있었을 텐데 말이죠!
Q. 기억과 망각에 기반한 작업을 하게 된 배경이 있으신가요?
기억에 대한 작업을 촉발한 것은, 어떠한 기억을 온전하고 명확하게 되살려보려는 노력은 언제나 실패한다는 사실에서 오는 일종의 좌절감이었습니다.
저는 이탈리아에서 태어나 세 살까지의 유년기를 그곳에서 보냈지만 이를 전혀 기억하지 못합니다. 어쩌면 특별했을 수 있는 이 시기를 간절히 기억해내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고, 심지어 어느 순간부터는 부모님으로부터 전달된 이야기와 남겨진 당시 사진들을 기반으로 저 스스로 상상해 낸 바가 마치 실제 기억인 것처럼 혼동되기까지 했습니다.
인간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도구로 알려진 기억이, 사실은 이렇게 잊히거나 재구성되는 등 매우 불안정한 상태이고, 그렇기 때문에 기억의 완벽한 재생은 어떻게든 실패한다는 아이러니가 작업에 중요한 영감을 제공했습니다.
Q. 사람의 기억과 망각 작용 때문에 벌어진 작가님의 에피소드가 있으신가요?
스스로 실소가 터질 때가 종종 있습니다. 예를 들자면 같은 색의 물감을 이미 샀다는 점을 까맣게 잊고 계속 또 삽니다. 제가 특히 좋아하는 색이 몇 가지 있는데, 어쩌다 작업대를 정리하다 보면 물감통에 그 색의 물감들이 서너 개씩 들어있더라고요. 물감 값이 저렴한 것도 아니라 그럴 때마다 슬픔이 밀려오지만, 이내 ‘휴, 이거 다 쓰려면 그림을 더 많이 그려야겠네...’ 라고 다짐하곤 합니다.
Q. 포토몽타주 기법을 사용하게 된 계기나 의도가 있을까요?
기억은 우리가 인지하지 못하는 동안 무뎌지거나, 생략되거나, 조작되거나, 사라지는 등의 양상으로 서서히 퇴색되고 재구성됩니다. 망각의 과정에서 기억은 처음 입력될 당시와는 다른 내용으로 지속해서 변모해갑니다.
제 회화에서 포토몽타주는 망각의 과정을 시각적 표현기법으로 해석한 것입니다. 포토몽타주 과정에서 행해지는 이미지의 해체, 변형, 재배치, 재조합, 중첩, 합성 등은 마치 망각의 메커니즘이 그러하듯 구상으로부터 추상을 여과해내고 재창조해내는 과정입니다.
망각은 예측할 수 있는 지향점이 없는 잠재적 과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포토몽타주의 편집 과정 자체는 제 의지에 의해 행해지지만, 그 결과물을 예측할 수 있는 경우는 없습니다. 원본에서 해체되고 편집된 파편 이미지들이 새로운 화면에서 만났을 때 어떠한 결과를 만들어낼지는 처음부터 알 수 없습니다. 이러한 점에서 망각과정과 포토몽타주는 유사성을 띤다고 생각합니다.
Q. 포토몽타주와 더해 레이어링이 작품에 중요한 부분인 것 같습니다. 이런 레이어링에 대한 영감을 받게된 배경이 있을까요?
학부에서 환경 디자인을 전공하고 관련 분야에서 일하면서 건축, 인테리어, 조경 등 공간에 관련된 이미지를 많이 접하고 창작 소재로 활용하는 것이 익숙했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런 이미지들을 회화의 주된 소재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회화에서는 화면을 ‘회화 공간’이라고 상정하는 경우를 쉽게 접합니다. 어렵고 추상적인 개념이기는 하나, 오랜 시간 공간을 다뤄와서인지 이를 꽤 자연스럽게 나름의 의미로 해석하고 받아들일 수 있었습니다. 저에게는 말 그대로 회화의 화면이란 가상의 ‘공간’이라고 받아들여졌고, 따라서 이미지를 만들고 그림을 그릴 때에도 ‘짓는다(build)’라는 감각으로 작업합니다.
디자인 작업을 하면서 각종 2D/3D 컴퓨터 그래픽 툴을 많이 다뤄왔습니다. 지금도 캔버스에 물감으로 작업하기 전 아이디어를 얻거나 스케치를 만들 때 포토샵을 자주 사용합니다. 컴퓨터 그래픽 툴을 다룰 줄 몰랐다면 포토몽타주 기법을 사용하지 못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레이어는 컴퓨터 그래픽 툴의 기본적인 이미지 구성 방식입니다. 레이어가 쌓여감으로써 그림이 완성되어가는 방식은 저에게 아주 익숙합니다. 그래서인지 회화 작업에서도 레이어를 쌓는다는 감각이 자연스럽게 작동합니다. 포토샵 스케치를 캔버스에 물감으로 옮길 때 포토샵에서 만들어진 레이어들을 동일한 순서로 차곡차곡 쌓아 올리는, 즉 빌드업(build up) 하는 식으로 작업합니다. 레이어는 판화와 같은 인쇄 방식에도 기본이 되는 요소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제 작업이 비록 장르는 회화이지만 레이어를 차곡차곡 쌓는다는 의미에서 판화와 비슷하다는 생각도 합니다.
Q. 주로 작업의 영감은 어디서, 어떻게 받으시나요? 영감이나 아이디어를 얻기 위해 특별히 하는 행동이나 습관이 있으신가요?
포토몽타주의 소재로 쓰기 위해, 그리고 영감을 얻기 위해 이미지들을 꾸준히 수집해오고 있습니다. 웹에서 찾은 이미지일 수도 있고, 잡지를 훑어보다 발견한 것일 수도 있고, 길을 지나가다 마주친 포스터일 수도 있고요. 주파수가 맞는다는 느낌이 오면 일단 수집해두는 편이지만 주로 건축, 공간에 관련된 이미지가 많습니다.
종종 수집한 이미지들을 갖고 포토샵으로 잘라냈다가 붙였다, 여러 가지 시각 효과를 주기도 하면서, 즉 포토몽타주를 하면서 놉니다. 여기서 만들어진 이미지들이 반드시 작품의 소재로 이용되는 것은 아니나, 예상 밖에 좋은 이미지들이 만들어지면 그것을 시작으로 다음 작품의 스케치로 돌입하기도 합니다.
색다른 감각을 활성화하기 위해 수채화, 펜 등의 아날로그 재료를 활용해 수집한 이미지들을 ‘추상화’ 시키는 드로잉을 하기도 합니다. 포토몽타주가 결국은 구상으로부터 추상을 여과해내는 과정이란 점에서 같은 맥락에 있는 작업입니다. 하지만 이런저런 경우의 수를 거쳐 천천히 완성되는 포토몽타주와는 달리, 드로잉은 종이에 수정 없이 한 번에 그려지고 빠른 속도로 완성되기에 고도로 집중된 감각이 필요합니다. 그 때문에 디지털 환경에 없는 물리적 색채의 감각, 우연의 효과, 즉흥 제스처 등을 훈련/탐구할 수 있습니다. 드로잉에서 체득한 감각은 캔버스 작업의 회화적 표현 가능성을 넓혀줍니다.
Q. 회화 작가로서 작업에 임하게 하는 모티베이션, 그리고 앞으로의 나아갈 방향 등에 대해 자유롭게 이야기해주세요.
작업은 혼자 하는 것이지만 결코 혼자서는 모티베이션을 끌어올리기가 쉽지 않습니다. 다행히 주변에 작업을 꾸준히 하며 열심히 살아가는 친구들이 있어 힘을 얻습니다. 마음이 통하는 작가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스스로 미처 인지하지 못했던 제 작업에 대한 과거, 현재, 미래를 발견하기도 합니다.
앞으로 수십 년 작업해 나가는 동안 주제나 표현은 변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제 평생의 작업을 관통했으면 하는 것이 있다면, 정지된 회화 평면임에도 그 안에서 느껴지는 깊이와 일렁임, 동(動)의 감각입니다.
요즘 작업의 주된 포커스는, 포토몽타주라는 모국어를 구사하면서도 새로운 제2, 제3의 언어가 될 표현을 심도 있게 연구하는 데 맞춰져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제가 원하는 회화의 깊이를 만들어내고 생동을 가진 회화 공간을 창작할 수 있을까 고심하고 있습니다.
Artist Profile
학력
2019 홍익대학교 일반대학원 회화과 졸업
2008 이화여자대학교 조형예술대학 환경디자인과 졸업
개인전
2019 Montage, SPACE 갤러리, 서울
주요 단체전
2018 제20회 단원미술제 선정작가전, 단원미술관, 경기도
2018 Pseudo Reality (석사 학위 청구전), 홍익대학교 현대미술관, 서울
2015 Monologue, 삼원페이퍼갤러리, 서울
수상
2018 제20회 단원미술제 선정작가, 재단법인 안산문화재단
2017 제4회 전국대학미술공모전 입선, 미술과 비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