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초대전]한기호: 나를 보는 풍경

아웃오브더박스
2022-0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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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7. 25- 7. 31, 2022 여름 성수박스 초대전]


Editor's note

요즘은 비가 자주내리는 날씨입니다. 비가 내리는 풍경을 보고 있자면, 비가 내리는 풍경을 보고 있자면, 어제의 풍경은 고민의 상념에 파묻혀 술이 한 잔 생각이 나지만, 오늘의 비내리는 풍경은 복잡한 모든 생각이 정리되고 차분해 집니다. 내일의 비 내리는 풍경은.... 비 좀 그만 내렸으면 좋겠다라며 짜증이 날 수도 있겠죠. 풍경은 동일한데 매 순간 마다 내 감정에 따라 풍경이 달라보입니다.  

풍경은 매일이 같아도 달라지는 나의 감정에 따라 매일의 풍경이 달라집니다. 

작품도 그러합니다. 어느날 그냥 그자리에 있던 작품, 어제는 그냥 지나쳤을 지라도, 그러나 오늘은 그 작품은 인생 작품이 될 수도 있습니다. 오늘의 나의 슬픔을 위로해 줄 수도 있습니다.


나를 보는 풍경

우리는 풍경을 바라봅니다. 그런 풍경의 시선은 어디를 향하고 있는 것 일까요? 풍경은 바라만 보는 대상이라는 일방향적 사고를 지적합니다. 한기호 작가의 노검화 YBW 는 성수동 한 거리의 풍경이 될 것입니다. 노검화는 성수 거리를 오가는 우리를 바라볼 것입니다. 노검화가 우리에게 던져주는 감정은 무엇일까요? 어제의 노검화와 오늘의 노검화는 서로 다른 감정을 전달할 것입니다.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의 감정이 다르다면요.




노검화 YBW, 캔버스위에 아크릴, 먹, 연필, 2021, 73x73cm


Q. 전시 제목이 매우 인상적입니다. 보통 내가 풍경을 바라본다고 하잖아요? 그런데 풍경이 나를 본다는 것은 매우 흥미롭습니다. 전시를 통해 전달하고자 하는 핵심 메시지는 무엇인가요?


같은 사물을 보아도 우리의 감정이나 환경에 따라 많은 것이 달라집니다. 저는 그 대상이 변하는 건지 제가 변하는 건지에 대해서 항상 궁금했습니다. 우리가 실상 본다고 말하지만 그것은 이야기나 대화와 같이 내가 보려고 하는 대상과 나는 한 쪽에 속하지 않은 동등하거나 유기적 관계에 있는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아주 요약해서 말해보자면 "우리는 무엇을 보고 느끼지만 그것은 사실상 내가 보는 것이 아니고 외부에 있다고 생각한 풍경이 오롯이 내 안에 있는 상태에서 내가 보는 것이다"라고 얘기 할 수 있습니다.

이번에 새로 만든 성수 박스의 작은 풍경은 누군가에게는 없는 풍경이고 존재하지도 않는 곳이지만 그 곳을 보게 되는 그 순간부터 그 곳은 다시 존재하고 내가 그 곳을 봤다고 믿듯이 그 공간도 그 관객과 더불어 존재하게 되고 서로를 바라보게 됩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저는 작업을 글이나 말로 설명하는 것에 대해서 의문을 가지고 있습니다. 작업이 완성 되어서 보여지기까지 작품에 대한 작가의 철학적 논리 체계가 얼마나 복잡하게 쌓아 올렸는지를 알려드리는 것보다 작업이 나왔을 때 그 작업을 바라볼 때 일어나는 교감에 더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작업과 작가가 분리되어야 된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제가 하고자 하는 모든 이야기들이 작업에 들어가 있고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어떤 경우에는 이렇게 다른 경우에는 저렇게 드러나고 밝혀지는 방식이 더 좋다고 생각 하고 있습니다.


Q. 노검화 작품에 대한 질문입니다. 노검화YBW 제목과 작업 방법에 대해 조금 더 설명해 주실 수 있을 까요?


노검화에서의 YBW는 YELLOW BLACK WHITE 의 앞글자를 한글과 섞어서 만들었습니다. 거기에서 화는 한문의 그림 화(畫)와 같이 느껴지기도 하여서 새로운 그림 분류로서 의미도 생각했습니다. 

처음 작업하였을때 3가지 색을 택한 이유도 항시 저에게는 노란색이 치유로서 작용해왔기 때문이고 흰색은 프라이머가 되지 않은 상태의 아사천에서 외부이자 오브제 성격의 흰색을 발견하면서 경계나 외부로써 느껴왔던 감정을 흰색으로 드러내고자 하였고 검정은 먹으로 대표되는 동양(East Asia), 죽음 및 아픔과 같은 감정으로서 나타내었습니다.



초창기작업은 외부.상처.고통을 3가지의 색으로 가지고 병치.혼합.구조적결합등으로 추상적으로 표현해보았는데 첫 전시 이후에는 노검화는 확대되어서 하나의 세계가 되고 색으로 표현되던 것들이 노검화Blindness 전시에서 색의 고유한 구조적 해체를 통해 해방되고 지금은 노검화는 하나의 우주와 하위 구조를 가지고 있는 체계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노검화는 철학적 개념이나 제가 생각한 감정을 구조적으로 시리즈화해서 보여주는 방식을 택하였는데요. 그 시기에 제가 생각해낸 예술이나 작업의 진척도를 표현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렇기 떄문에 노검화작업은 하나의 앨범처럼 전시 하나에 구조적으로 만들어져 있고 서로 유기적으로 통하기도 합니다.

이번에 전시되는 작품은 첫 전시때 선보였던 작업입니다. 젯소칠이 되지않은 하얀 캔버스 천, 상처를 나타내는 연필 선과 먹, 그것을 덮어서 회복하는 노란색으로 구성되어있었는데 이 당시에 과연 우리는 상처를 회복할 수 있나에 대한 고민에 빠져있었습니다. 그래서 모든 화면을 노란색으로 덮었다가 사포로 화면을 다 긁어내고 반복되는 사이에서 작업이 완성되었습니다.

저는 희망을 이야기 하고 싶었습니다. 계속 아프고 다치고 우리는 다시 그것을 칠하고 회복하고 색이 그렇게 반복되어서 아사천이 다 드러날정도로 흉터들이 남고 그럼에도 나는 희망을 보고 싶었기 때문에 노란색으로 마무리하였습니다. 


Q. 노검화 작품에 대한 질문입니다. 일반적으로, 노랑, 검정은 우리가 서로를 더 잘보이기 위해 사용하는 정 반대의 색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두 색의 중화를 표현하기 위한 시행 착오나, 실험 등의 과정에 대해 이야기 부탁드립니다.


노란색이라고 했을때 사실상 브라운에 가까운 색까지도 있을정도로 노란색의 범위는 넓습니다. 우리가 색을 말할 때 결국 그것은 부르는대로 그 색이 됩니다.

저는 작년 전시 노검화Blindness에서 색의 구조적 해체를 점자를 통해서 전맹인 분들의 색에 대한 관념을 이용해서 고유한 색을 찾고자 하였는데요. 그 결론은 색은 존재하지 않고 색은 보는 사람에 따라 다른 것이고 색은 의미로만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그 이후로는 모든 색에 대한 개념이 없어졌습니다 결국 내가 빨간색이라고 말하는 색을 써도 보는 사람에 따라 다르기 때문에 그 색은 오로지 저에게만 존재하는 것이 되버리는 것이기에 그 뒤로 저는 모든 색을 해방시키고 노검화에서의 3가지 색의 의미를 확장시켰습니다.

이것이 최근의 가장 관심을 가지고 있는 이면과 바라보기에 관한 저의 화두이기도 합니다. 불교에서 선적으로 아무것도 모른다 할 때 저는 기술적으로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로 고유한 색을 찾고 있습니다.


Q. 작가님은 상처와 회복에 대한 메시지를 위한 작업을 주로 하시는데요. 실제 캔버스 위해 상처를 위한 작업을 하고, 치유의 색으로 덮어 내려갈 때 작가님 스스로에게 치유의 시간이 되어가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상처에 대한 이야기와 회복 작업은 지극히 기술적이거나 노동에 의한 작업이기도 하지만, 초창기에 작업할때는 특히 카드늄옐로우를 쓸때 저는 치유의 마음을 많이 느꼈습니다. 또한 작업이 나를 위로하고 이 작업이 또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위로가 되고 그런 소망을 가졌었습니다. 

지금은 상처가 덮히는가에 대한 문제와 반복되는 고통속에서 존재론적 이야기들 그럼에도 희망을 이야기하고 싶은 마음 다양한 시선으로 해석될 여지에 대한 논리체계들이 뒤섞이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저는 희망을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Artist Profile


개인전

2022 좋은카페 초대개인전, 마곡 

2021  OUT OF THE BOX, 신당

2021  노검화 Blindness 사이아트도큐먼트, 인사

2021  노검화YBW h.artbridge갤러리 방배 

주요 단체전

2022 2022STAF ADM 갤러리, 역삼

2022 빈칸아트페어, 성수

2021  ntf begins 아트페어 사이아트

2021  SEEA2021 예술의 전당 한가람미술관  

수상

2021  달빛재단후원작가선정


작품 소장

오픈 갤러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