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그룹전]고숙&이선: 한지실험 : pH

아웃오브더박스
2023-03-26
조회수 400

[2023. 4. 9 - 2023. 4. 14 | 인의박스]





Q. 작가님 두 분의 간단한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두 분께서는 어떤 계기로 함께 작업하게 되셨나요?


 

고숙)

안녕하세요, 저는 작가 고숙입니다. 저는 네덜란드의 디자인 아카데미 Eindhoven에서 정보 디자인 석사 학위를 받은 후, 주로 설치 작업과 미디어 아트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이선)

안녕하세요. 네덜란드와 한국을 베이스로 활동하고 있는 텍스타일 작가 겸 소셜 디자이너 이선입니다.

 2020년 1월 신현세 선생님 작업실에 처음 방문하게 되었는데, 그때 선생님 한지에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선생님의 한지는 소비 사회에서 쏟아지는 상품들과 차원이 다른 공간과 시간 속에서 빚어지는 [60년 동안 한지만 바라본] 선생님 인생의 집합체였습니다. 생산, 소비와 폐기가 난무한 현대 소비 사회에 절실하게 필요한 건 선생님의 한지 이면에 감춰진 진솔한 장인 정신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선생님의 한지를 주제로 책을 제작하고 싶었습니다. 책을 만드는 일은 디자인적 접근이 필요한 작업입니다. 고숙 작가는 설치작가로 활동하고 있지만 디자인 아카데미 아인트호벤(DAE)에서 인포메이션 디자인을 전공했고 저 또한 소셜 디자인을 전공하였기에 함께하면 흥미로운 작업을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해서 고숙 작가에게 협업을 제안했습니다. 그 후 (개인적인 사정으로 이번 전시에는 참여하지 못하셨지만) 작년 한지문화산업센터에서 전시했던  <한지실험>에는 카이스트에서 신소재공학을 수학하신 최진영 선생님께서 합류하셔서 실험과 작업에 다양한 관점과 전문성을 더해주셨습니다.

 

 




Q. 본 전시 [한지실험 : pH]를 통해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무엇인지 작가님의 관점으로 설명해주세요.

 

이선)

[한지실험 : pH]는 2021년부터 시작된 [한지 실험]의 연작입니다. [한지실험]이 제공하는 일련의 실험들은 재료와 노동의 가치, 인간의 보살핌, 인간과 자연의 공존에 밀접하게 닿아있습니다. 프로젝트 속 새로운 대화 방식은 우리가 막연하게 사용하는 한지를 어디에서, 누가, 어떻게 만드는가에 대한 중요한 질문을 던집니다. 동시에 진행되는 한지 자체의 물성 연구는 전통 공예의 범주 속 막연히 강요된 보존과 계승의 대상으로 여겨지는 한지를, 지속가능한 삶을 위한 강력하고도 필수적인 도구로 재정의하고 실험을 통해 일어나는 과거와 미래의 조우는 한지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끌어올리며, 동시에 현대 사회가 직면한 환경 위기에 대한 새로운 대안을 보여줍니다.

[한지 실험]에서 사용된 무형문화재 신현세 선생님의 전통 한지는 ‘카르툴라(Chartula)’라는 명칭의 ‘성 프란체스코’ 친필 기도문과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그림 등 다수의 이탈리아 국보급 유물, 지류(紙類) 문화재 복원에 사용되며, 한지 최초로 이탈리아 도서 병리학 연구소(ICRCPAL)로부터 ‘지류 문화재 복원 인증서’를 받은 한지입니다. 이 프로젝트에서는 신현세 선생님을 인터뷰하고 한지 제조 과정을 기록하는 데 그치지 않고, 신현세 선생님이 만드신 한지의 물성을 탐구하고 실험해 전통 소재에 대한 무조건적인 보존이라는 수동적인 입장을 넘어 지속 가능한 소재로서의 한지가 지닌 역할과 정체성을 명확히 할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고숙)

[한지실험 : pH]는 이선 작가와의 콜라보레이션으로, 한지라는 한국의 전통 소재를 주제로 합니다. 이번 전시의 목적 중 하나는 젊은 세대들이 '한지'라는 소재에 대해 더욱 정확하게 이해하고, 또한 한지를 구성하는 다양한 특성과 성분을 알리는 것입니다. 저희는 일련의 실험을 통해 한지의 고유한 특성을 테스트하여, 전통 소재로서의 아름다움과 복잡성을 부각시키고자 합니다.

이번 전시에서는 한지의 물성을 직접 확인할 수 있는 설치 작업들을 기대하실 수 있습니다. 산도를 측정하는 지시약에 담근 한지들을 그대로 전시함으로써 방문객들은 한지의 화학적인 성질을 가까이서 살펴볼 수 있으며, 본 전시를 통해 한지라는 재료의 내구성과 질감을 탐구하는 등, 한지의 고유한 특성과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Q. 고숙 작가님께서는 주로 설치나 미디어 작업을 해오셨던 것으로 파악 되는데요, 이 작업들이 [한지실험: pH]와 어떻게 맞닿아 있는지 궁금합니다.

 

고숙)

제 작업을 관통하는 주요 주제 중 하나는 전통의 현대화입니다. 이는 “한지실험”의 핵심 주제와도 일맥상통합니다. 전통적인 문화를 현대적인 기술과 함께 융합하여 다시 해석함으로써, 새롭고 역동적인 방식으로 전통을 구현하는 것과 동시에 그들의 문화유산을 존중하는 것이 저의 목표입니다.

저의 이전 작업은 주로 키네틱 설치와 뉴미디어에 집중했지만, ‘한지 실험’전시는 전통 한지의 속성과 가능성에 대한 탐구에 조금 더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전통의 현대화에 관심이 있는 작가로서 한지는 풍부하고 매혹적인 탐구의 대상입니다. 재료의 고유한 특성과 성분을 보여주고, 객관적인 과학 실험을 통해 아름다움과 복잡성을 보여줌으로써 방문객들이 한지를 감상하고 전통 고유 소재에 대해 한 번 더 생각해 보기를 바랍니다.




Q. 이선 작가님의  Consumption of Heritage 작업에서 한지를 소재로 작업하신 것을 보았는데 이 작업 시기 부터 한지라는 소재에 관심을 갖고 사용하셨기 때문인 것인지, 위의 질문과 마찬가지로 작가님의 이전 작업과 [한지실험: pH]와의 연결고리를 여쭈어보고 싶습니다.


이선)

한지에 대한 관심은 2017년부터 시작됐습니다. 당시에는 전통 한지보단 한지사나 한지 원단에 관심이 있어 전주나 익산을 찾아다녔고 2018년 DAE에서 졸업 작업을 진행하면서 자연스럽게 한지를 사용하게 됐습니다.

졸업 작업인 <Consumption of Heritage>는 패스트 패션 산업이 값싼 소재로 만든 의복을 저렴한 비용으로 제공하여 소비자에게 즉각적이고 높은 만족감을 유도하고, 꾸준한 소비가 습관화된 소비사회에 대안을 찾고자 시작한 프로젝트입니다. 현대 소비문화는 끊임없는 생산과 폐기의 반복으로 이루어진 악순환을 낳았고, 이는 환경 위기라는 결과를 초래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환경 위기에 대한 윤리적 죄책감을 느끼면서도 소비를 멈추지 못하고 오히려 더 많은 옷을 사고, 폐기하는 행위를 계속해서 자행하고 있습니다.

한국의 전통 공예인 한지와 한산모시 그리고 나전칠기를 사용하여 패션 산업이 직면한 문제의 대안을 제시하고 착용자와 의복, 소비 및 일회성, 그리고 폐기 등의 관계에 관한 연구를 통해 전통 공예 기법과 현대적이고 새로운 테크닉의 접목해 작업했습니다. 그 중 한지는 기법에 따라서 무궁무진한 변주가 가능한 소재하고 생각했고 그 계기로 꾸준하게 연작을 선보이게 됐습니다.



 

Q.  온라인 자료들을 통해 접한 두 작가님의 작업물과 방향성이 굉장히 흥미로웠습니다. 최근 진행한 작업과 어떠한 마음가짐으로 작업에 임하셨는지 들어보고 싶어요.

 

고숙)

최근 작업으로는 예술의전당 서예 박물관에서 선보인 미디어와 서예의 융합 작업이 있었고, 이번 4월 말에는 '언노운 오션’과의 협업으로 한국 설화에서 영감을 받은 3D 작품들과 AR 기술을 결합한 전시를 을지로 빈칸에서 다른 작가분들과 함께 선보일 예정입니다.

앞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저는 새로운 매체를 활용하거나 다른 분야와 융합하여 새로운 시도를 하는 것은 물론, 전통적인 요소들을 창의적으로 조합하는 것에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저는 전통과 현대 기술의 융합을 탐구하고, 이를 전시와 설치를 통해 다른 이들과 공유함으로써, 예술가로서 작업을 이어나갈 수 있는 원동력을 얻습니다. 이를 위해 저는 다양한 재료와 매체를 시도해 보고, 다른 작가들과 협업하며, 작업을 개선하고 다듬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합니다.

 

이선)

4월 4일에 문화역서울284에서 오픈한 ‘다시, 자연에게 보내는 편지' 전시에서 선보이는 신작 <한지탑>은 돌이 지닌 영구불변성이라는 가장 원초적인 종교 원리로 인해서 자연스럽게 신앙 대상물이 된 돌탑에서 영감을 받았습니다. 어릴 적 할머니 손을 잡고 절에 가면 항상 돌탑에 돌을 얹으며 소원을 빌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어린 나이에도 그 행위가 주는 신성함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또한 과거에는 마을 어귀에 주민들이 소망과 정성으로 하나씩 쌓아 올린 톨탑이 있었는데 이것은 공동체의 상징이기도 했습니다.

반면 최근 몇년간 해외에서 돌쌓기는 명상적 행위와 자신의 흔적을 SNS에 공유하고자 하는 열망이 뒤섞인 가벼운 유희나 챌린지가 되었고 이러한 행위는 자연 환경의 지반 침식을 초래하고 동식물의 생존을 위협한다고 전문가들은 경고합니다. 저는 <한지탑>을 통해 개인적인 만족과 예술적 성취 이면에 있는 인간의 욕망을 드러내고 자연과 인간, 전통과 예술의 상관관계에 대해서 질문하고자 합니다.

또한 단단하고 무겁고 차가운 물성의 돌을 유연하고 가볍고 따뜻한 물성의 한지를 사용&대체하여 대비와 반전의 효과를 주었습니다. 찢고 붙이는 찢고 붙이는 반복적이고 수행적인 행위는 수양과 정성을 상징합니다.




 

Q. 끝으로, [한지실험 : pH]이 아웃오브더박스의 상자를 통해 전달하고자 하는 메세지가 있을까요?


이선)

현대 사회에서 전통 공예를 보존하고 계승하는 일은 중요한 과제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이를 위해 전통 방식을 고수하는 작업도 물론 중요하지만 젊은 작가들의 다양한 시도와 접근법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저에게 새로운 접근법은 한지를 전통 공예의 프레임에 가두지 않고 소재 그 자체로 보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이 아웃오브더박스의 상자 개념과 비슷하게 연결될 것 같습니다. 공예라는 틀에서 벗어나기 위해 오히려 한지에 깊게 집중하는 것, 이를 통해 우리는 새로운 가능성을 찾을 수 있고 한지는 전통의 프레임에서 더 자유로워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고숙)

전통을 현대화시키는 예술가로서, 종종 '전통적'이거나 '전통적'으로 간주되는 것의 경계를 넘어서는 제 모습을 발견하곤 합니다. 저는 어떤 의미에서 전통적인 예술 형식과 문화적 규범이 부과할 수 있는 기대와 한계에서 벗어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진정한 의미에서 상자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먼저 상자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다시 말해, 우리는 먼저 프레임워크나 일련의 경계를 설정해야 이를 극복하고 새로운 가능성을 탐색할 수 있습니다. 'out of the box' 전시장은 한지의 속성과 가능성을 탐색할 수 있는 작고 친밀한 공간을 만들어준다는 점에서 독특한 기회를 제공합니다. 이 공간에서 우리는 관람객의 시선을 집중시키고 소재와의 친밀함과 연결성을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저에게 상자라는 개념은 해결해야 할 도전이나 퍼즐을 나타내는 것 같습니다. 한지실험: pH 전시를 준비하면서, 한지의 고유한 속성과 성분을 매력적이고 유익한 방식으로 시각적으로 보여줄 방법을 찾아야 하는 과제가 주어졌습니다. 저희는 한지의 산도를 보여주는 작업들을 그대로 전시함으로써, 방문객들이 한지에 대해 더 깊게 접할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궁극적으로 틀에서 벗어나는 것은 한계나 기대를 뛰어넘는 것일 뿐만 아니라 새로운 가능성을 탐색하고 주변 세계와 연결하는 새로운 방법을 찾는 것이라고 믿습니다. 한지실험 전시를 찾는 관람객들이 바로 그런 영감을 받아 복합성과 아름다움을 지닌 한지의 풍부하고 매혹적인 세계를 탐험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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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지실험 : pH]  



Artist's Profile


학력

  • 이선, 2019, Design Academy Eindhoven, Social Design
  • 고숙, 2018, Design Academy Eindhoven, Information Design


단체전

  • 2022, 사이에서(Feather and Constellation), 한지문화산업센터, 서울